▒ 대체에너지 개발은 뒷전
2004-08-25
▶ 대체에너지 개발은 뒷전 ◀ 국내 원유 수입의 80%를 차지하는 두바이유 가격이 배럴당 37.96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지난주 말. 평소 별다른 정체가 없었던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는 주변 섬과 해수욕장으로 떠나는 휴가 차량이 꼬리를 물었다. 서해안고속도로의 정체는 이보다 더 심해 거대한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지난 5월께 유가가 치솟기 시작할 때 잠깐 한적했던 고속도로와 국도가 `만성 고유가`에 적응(?)한 차량으로 다시 북적이고 있다. 같은 날 서울 강남의 A극장. 더위를 피하려는 시민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그런데 적지 않은 관람객은 긴소매 차림이다. 워낙 에어컨 바람이 세 추위를 막기 위해서다. 이처럼 정도를 넘어선 에어컨 사용은 전력 소비 급증으로 이어지고 있다. 고유가에 에너지절약 운동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이를 비웃기나 하듯 올해 전력 소비는 5126만㎾로 지난해 최대치보다 400만㎾나 많아졌다. 원자력 발전소 4기에 해당하는 양이다. 이대로면 5300만㎾도 불안하다. 고유가가 고착화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소비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게다가 자원빈국인 한국으로서는 고유가의 유일한 해법은 `신재생(대체) 에너지`와 `해외 자원개발`뿐이지만 20여년 동안 대책없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어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전체 에너지에서 풍력 태양광 연료전지 등 신재생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0.1% 로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해외 유전개발을 통한 자원 자주비율도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10% 목표치만 내세울 뿐 여전히 3%대에 머물러 있다. 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정부가 나서 신재생 에너지와 해외 자원 개발을 외쳤지만 ` 반짝 행정`에 그쳐 예산 지원 등이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신재생 에너지 기술이 선진국에 비해 크게 뒤떨어져 기술 종속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해외 유전개발도 중국 일본 등의 외교력에 밀려 설 자리가 줄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에너지관리공단에 따르면 국내 신재생 에너지 기술 수준은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선진국에 비해 풍력과 연료전지는 50%, 수소에너지는 35%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나마 기술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태양광도 선진국에 비하면 75% 수준으로 한참 뒤떨어져 있다. 오는 18일 강원도 대관령 고지대에서는 풍력 발전기 4기의 준공식이 열린다. 한국에서도 본격적인 신재생 에너지 시대가 열렸음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의미가 남다르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의미는 퇴색한다. 풍력 발전기 건설에 들어간 설비와 기술 거의 전부가 `덴마크산`이기 때문이다. 발전기 1기를 세우는 데 지불한 돈 15억원보다 더 큰 맹점은 앞으로 유지 보수에 이르기까지 모두 덴마크 기술자에게 의존해야 한다는 점이다. 강원도청 관계자는 "대관령뿐만 아니라 태백 등 여러 곳에서 민간 주도의 풍력 발전을 추진하고 있지만 국내 기술에 한계가 있어 대부분 해외 기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고유가 파고를 타고 신재생 에너지 붐이 일면서 기술 종속이 심해질 가능성이 커졌다. 앞서 본 풍력이 대표적인 사례. 덴마크는 물론 독일 미국 등의 주요 업체들이 한국 시장을 넘보고 있다. 강용혁 에너지기술연구원 박사는 "풍력은 날개 등 요소 기술이 워낙 뒤져 있고 내수도 활성화되지 않아 해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기술은 소규모 ㎾급에 머물러 있을 뿐 ㎿급 대용량은 모두 해외 기술이다. 비단 풍력뿐만이 아니다. 80~90년대 국내에서 붐을 이뤘던 태양광 기술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그 사이 태양광 관련 세계 시장은 샤프 등 일본 업체들이 이미 주도권을 잡고 있다. 원장묵 에너지관리공단 대체에너지 실용화팀장은 "일본은 정부 주도로 시장을 키우면서 태양광 관련 기술의 경제성이 확보돼 7년 동안 관련 장비 가격이 70%가량 내려갔다"고 말했다. 이미 대량생산체제를 구축한 일본 업체들은 이를 기반으로 세계 시장을 호령하고 있는 셈이다. 기존 휘발유 의존도를 크게 낮출 수 있는 하이브리드, 연료전지 분야 에서도 뒤처지기는 마찬가지다. 박홍규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에 다녀왔는데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자주 눈에 띄더라"며 "그 동안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수익성이 없어 별다른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고유가가 계속되면 가격 불이익이 상쇄돼 크게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부에서는 일본 자동차 업체들이 앞으로 5년 안에 세계 시장을 석권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 분야에서 국내 기술은 일본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해외 자원개발 비율도 마의 5% 선을 넘지 못하고 있다. 탐사 개발 생산까지 최소 1 0년 이상 걸리는 자원개발 특성상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불가피한 데 일본 등에 비해 턱없이 열악한 예산과 조직 때문이다. ◇ 초기에는 정부 역할이 중요=신재생 에너지와 해외 자원개발은 초기 정부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두 사업 모두 경제성이 떨어지고, 위험이 큰 사업인 만큼 정부에서 어느 정도 상쇄해 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국내 1차 에너지 시장에서 신재생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대략 1.5% 수준. 이 마저도 대부분 산업폐기물이나 쓰레기를 태울 때 나오는 소각열을 이용한 것으로 태양광 풍력 등 순수한 신재생 에너지 비율은 전체의 0.1% 정도에 그친다. 반면 덴마크(9.8%) 미국(4.5%) 등은 크게 앞서 있다. 게다가 유럽연합(EU)은 2010 년까지 전체 전력의 22%를 재생 에너지로 채우겠다는 야심찬 목표까지 세웠다. 정부도 뒤늦게 신재생 에너지 시장과 해외 자원개발을 늘리겠다며 각종 방안을 쏟아냈다. 2011년까지 신재생 에너지 비율을 5%까지 늘리겠다는 목표 아래 지난 5월에는 풍력 태양광 연료전지 등 3대 신재생 에너지 추진단까지 발족해 5년 동안 25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일정 규모 이상 공공기관을 신축할 때는 공사비의 5%가량을 신재생 에너지 설비에 사용하도록 의무화했다. 해외 자원개발 비율도 2010년까지 10%로 늘리기 위해 정부 지원금액도 2배로 확대하고, 대출이자율도 내리는 등 그 어느 때보다 의욕적이다. 하지만 얼마나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추진될지는 미지수다. 오일 쇼크 이후 80년대 태양광이 붐을 이뤘지만 기술력 없는 중소업체의 난립으로 제대로 된 기술을 개발하기는커녕 사후관리조차 제대로 안돼 그나마 관심있던 일부 소비자로부터 외면받았다. 90년대 중반 자원정책국장과 실장을 지냈던 한준호 한국전력 사장은 "신재생 에너 지든, 해외 자원개발이든 초지일관 꾸준히 추진할 수 있도록 예산지원 등이 돼야 하는데, 유가가 오르면 좀 하는 듯하다 떨어지면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일이 반복된다"고 꼬집었다. 부경진 에너지경제연구원 신재생에너지팀장은 "전문가를 키우고, 기술개발에 집중 적으로 나서면 신재생 에너지 5% 달성이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현재 상태로는 회의적이다"고 지적했다. 강용혁 박사는 "반도체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에서는 태양광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며 "전문가 육성과 시장 형성 등을 체계적으로 해나간다면 국내 기업이 세계 수준에 오를 수 있는 잠재력은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 자원개발에 나서고 있는 기업들은 정부 지원 확대가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업계 관계자는 "엑손모빌 등 세계적인 에너지 개발회사에 비하면 국내 기업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라며 "에너지 개발에는 막대한 자금은 물론 국가간 정치, 외교력 등 이 뒷받침돼야 하는 만큼 단독회사가 주도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도 "현재 정부가 시행중인 금융 세제상 혜택은 자주개발 목표 를 달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에너지 및 자원사업 특별회계 예산에서 지원 되는 석유개발사업 지원 규모를 확충하거나 석유개발 사업만을 위한 별도 기금을 조성하는 것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정부의 외교력을 러시아 중동 등 에너지 생산국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2004-08-08 매일경제] <황형규 기자 / 손일선 기자>